바실의 도전기/경찰 일기 (2019.05 ~ ?)

[경찰일기 05] 중앙경찰학교에서의 한달

Nomadic-Basil 2021. 1. 30. 15:34





안녕하세요. 바실입니다.

오랜만에 포스팅을 올려봅니다.

입교한지 한달 조금 넘었네요. 4월 중순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교육기간의 1/3 정도 했네요.. 빨리 집 가고 싶습니다 ㅎㅎㅎㅎㅎ


아시다시피, 현재 저는 충주의 중앙경찰학교에서 교육생 신분으로 생활 중입니다.

아무리, 순한맛 군대라고 해도 군대는 군대이니 포스팅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노트북을 사용하려면 학교에 신고를 해야하는데 그 과정이 다소 귀찮고, 테블릿으로 포스팅하자니 그것도 귀찮고..

매일 이론교육과 훈련으로 지친 몸으로 귀찮음까지는 감당 못하겠더라구요..ㅎㅎ

그나저나 어제 바실 인생 처음으로 첫 월급을 받았는데요!

금융치료 덕분에(?) 힘이 나서 그런가?

그동안 중앙경찰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포스팅으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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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좁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중앙경찰학교 식당에서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를 우연하게 보게됐다. 1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서로 알아봤다. 짧은 인사를 마칠 찰나에 그 친구가 나에게 귓속말로 조용히 얘기했다.

"바실아, 너도 많이 내려놨구나.."

한 4~5초 정도는 이게 무슨 뜻이지? 라고 속마음으로 생각했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취업 눈높이를 많이 내려놨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와 나는 중학교 때 반에서 3~5등 정도는 했었으니까.

하긴, 나도 그 친구를 봤을 때 좀 의외였다.

나름 중학교 때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친구가 왜 순경을 준비했지? 라고  
아마 그 친구도 나를 보면서 같은 의미로 저런 말을 했을 것이다.

뭔가 서로 거울을 본 느낌이다.

'어릴 때 공부 잘했던 게 뭐가 중요해? 이 시국에 밥벌이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라며 내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그 합리화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은 합리화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동물이니까


  

- 내가 정말 발표를 잘한 걸까? 자만심이였을까?

예전 포스팅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말재주가 좋다.

친구들 앞에서 재치있게 얘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잘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즐긴다.

정확히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재치있게 표현하는 행위를 즐긴다. 

대학시절, 발표 수업만 몰아 들었던 학기는 학점이 4.43과 더불어 장학금을 받을 정도 였다.

대학시절, 나보다 발표를 잘하는 학생은 딱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바로 총학생회장, 그 분은 정말 아나운서급 달변가였다.

여하튼! 결론은 나름 내 말재주와 발표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경찰학교 수업 조별과제에서 발표자가 됐다.

진부함과 거리가 먼, 발칙하고 비판적이고 재치있게 발표를 마쳤다.

발표가 끝난 후, 쉬는시간에 학급원들과 담배를 피우러 가는 길에 사람들이 내게 칭찬섞인 말을 건넸다.

"바실아, 너 발표 되게 잘하더라"

"바실 형, 와 면접시험때 그냥 찌발랐겠는데요? 말 존나 잘해요"

"바실 씨, 발표 정말 잘 들었어요"

"야 바실아, 다음 발표도 너가 해줘"

등등..

그렇게 쉬는시간이 끝나고,

조별끼리 상호평가를 하라는 교수님의 지시에 다들 단톡방 투표를 하게 됐다.

내심 내가 1등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투표결과는 내가 1등이 아니였다.

분명히 나보다 발표 잘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1등이 누군가 하고보니 우리 학급의 인싸형 이었다.

발표 내용, 전달력은 그닥이었는데 학급들하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형이었다.

아마 인기투표로 그 인싸형이 1등이 된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질투가 샘솟는 것도 아니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제일 발표를 잘했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자만심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가진 것 중에서는 최고의 재능이라고 여겼던 말재주가 부정당하는 충격감이었나?



- 출신

중앙경찰학교 교수님들은 외부에서 온 강사가 아닌, 대부분 순경출신이다.

순경부터 시작해서 적으면 10년 많으면 20년 이상의 베테랑 경찰분들이 교수생활을 하신다.

나랑 같은 순경출신이라 그런지 교수님들도 우리에게 교육생, 학생이라는 말보다는 후배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인지 교수-학생 사이 특유의 수직적인 문화보다는 선후배 동료같은 수업분위기 이다.

대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대학교 교수님들은 대부분 SKY 학사출신에 해외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은 초엘리트이고 학생들은 인서울 하위권이라.. 출신이 달라서 그런가?

대학교 교수님들은 다소 권위적이고 학생들을 본인들이 계몽시켜야할 대상으로 여겼나 싶다. 약간의 선민의식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중앙경찰학교 교수님들은

"후배님들, 저는 연구논문도 없고 박사학위도 없고 학자도 아닙니다. 교수라는 직함이 있지만 교수가 아닌 베테랑 경찰로서, 경험이 많은 선배경찰로서 여러분들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저도 모르는게 많으니 서로 같이 배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씀하셨다.

또 강당에서 강연을 하시는 교수님은 이런 인사말도 하셨다.

"안녕하세요! 신입 경찰 후배님들,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한 겨울에 팬티만 입고 춤출 수 있는 중앙경찰학교 xx계장입니다. 반갑습니다! "

아마 출신이 같기에 이런 멘트를 하실 수 있으려나?

탈권위적인 교수님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 공무원의 특권, 표현의 자유

만약, 삼성전자 신입 교육 담당 직원이 연수원에서 신입사원을 앞에 두고 삼성전자를 비판할 수 있을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앙경찰학교에서는 꽤 흔한 일이다.

교수님들은 교육생인 우리들을 앞에 두고 경찰 조직에 대한 문제점, 날이 선 비판을 서슴지않게 한다.

'현장에서 아무리 개선사항을 외쳐도 중간 관리자가 막아서 위까지 전달이 안된다'
'지구대 파출소에서 근무하다보면 별 이상한 선배같지 않은 선배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이런멘트를 하신 교수님도 있었다.

'중앙경찰학교가 경찰에서 가장 노답인 곳입니다. 저는 중앙경찰학교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뭔 쓰잘떼기 없는 과목들, 현장에 도움 안되는 교과서 보면 뭐 합니까? 그리고 교수가 무슨 교수입니까? 교수들 연구실적 있어요? 박사학위 있어요? 아마 지금 경찰채용시험 보면 다 떨어질 걸?
아 됐고, 저는 학교 폭파시키려고 교수로 왔습니다. 여러분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만족하십니까? 아 나는 여기 싫어요.'


이런 파격적인 비판의식을 가진 선배경찰, 교수님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공무원의 특권인 '극한의 고용안정'이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도 극한으로 보장해주었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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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일기 끝.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