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치료후기(바실)

성인 ADHD 약물치료 후기 109(ADHD 약물치료 3년차의 구구절절)

Nomadic-Basil 2022. 2. 1. 10:46

 

 

2019년 1월부터 ADHD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2022년 2월인 지금, ADHD 약물치료를 시작한지 어언 3년이 됐다.

 

처음에는 약물에 대한 기대감, 막연한 두려움이 컸고 시행착오를 꽤 오래 겪었다.

 

뭐...이제 약물복용 3년차 짬(?)이 되다보니 자유자재로 약물을 적시 적소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콘서타 18mg~54mg 까지 모두 복용해봤고, 메디키넷리타드 10mg~35mg 까지 모두 복용해봤다.

 

저용량으로 인한 약물 효과가 없어서 ADHD란 질환이 정말 존재하기나 할까? 라는

 

병에 대한 의심, 약물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고용량으로 인해 음료를 마시는 것조차 구역질이 나서 못 마실정도로 식욕부진의 경험을 겪기도 했다.

 

 

흔히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도사'라고 불리우곤 하는데, ADHD 약물에 대해서 '도사'(?)가 된 듯 싶다.

 

물론 의학적인 지식을 뜻하는게 아니라 ADHD 약물을 다년간 복용한 환자의 시점에서

 

'약물'의 슬기로운 활용법에 대한 '득도'라고 말하면 알맞겠다.

 

오직 나에게만 커스텀마이징된 약물 사용법이다.

 

앞서 말했듯이 '오직 나에게만' 적용되는 슬기로운 약물 사용법인 것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도 있으니까.. 약물에 대한 질문은 되도록 답변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나는 의사가 아니니까, 약물에 대한 답변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방문자분들의 너그러운 관용을 바란다.

 

3년간 ADHD 약물을 복용하면서 느낀 점을 짧게 써보려 한다.

 

일기 형식인만큼 솔직한 나의 감정, 거친 표현을 정제없이 그대로 담아냈다.

 

구어체와 문어체가 왔다갔다 하며 의식의 흐름대로 휘갈겨 썼다!

 

독자의 넓은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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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뭐하러 열심히 노력해? 그냥 약 먹으면 되잖아. 괜한 수고하지마. 노력도 타고나는 거야.

 

 

- ADHD 약물은 나에게 드라마틱한 효과를 가져다 줬다. 

 

- 약물 복용 이전에는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의자에 앉아 있어도 도저히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 나는 의지박약, 멘탈 쓰레기라고 스스로 학대했었다.

 

- 그런데? 약 한알이면 모든게 해결됐다. 심지어 공부가 재밌게 느껴질 정도였다. 

 

- 나에게 만큼은 노력, 그 전부가 모두 유전이었다.

 

- 성공한 사람들 혹은 고시패스한 사람들이 얘기하는 "죽을만큼 노력했다. 그러니 너네들도 나처럼 노력해서 성공해라"처럼 진부한 '근성론'에 입각한 메세지들이 매우 거북하다. 아니 솔직히 역겹다. 너넨 ADHD 없잖아?

괜한 반항심이 생겨 별 생각을 다하게 됐다. 

 

- '노력, 의지? 웃기지마. 너넨 나처럼 ADHD가 있었어도 고시패스 했을까?'

 

 

 

 

 

2. 병원을 늦게 간 대가는 대학교에 대한 미련와 경찰이란 직업

 

 

- 나에게는 형제가 한명 있다.

 

-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의 형제는 ADHD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 그렇게 나의 형제는 인서울 상위권 대학교에 들어갔고 고시에 패스해서 전문직으로 고연봉을 받으며 멋있게 살고 있다.

 

- 반면에 나는? 나도 뭐.. 중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5등 정도하는 모범생에 가까운 학생이었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성적이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다. 하긴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공부에 젬병인 ADHD이니까. 그래도 외가쪽의 공부머리 유전자는 있어서인지 '열심히' 공부한 건 아닌데 성적은 뭐 반 10등안으로 유지하긴 했다. 특이하게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 과목은 전교 6등까지 해봤다. 

 

- 재수를 했다. 공부를 하고싶지만 공부가 안된다. 이런 ADHD의 마음을 사람들은 알까? 10시간 앉아있으면 1~2시간만 집중해서 공부가능한 ADHD의 답답함 말이다.

 

- 재수를 해서 인서울 중하위권(?) 대학교에 입학했다. 명문대까지는 아니지만 어디가서 대학을 물어볼 때 창피하지는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정도? 그렇다고 막 자랑할 정도 까지는 아닌..

'오, 고등학교 때 공부 좀 했네?'라는 반응이 대다수 였던 것 같다. 

 

- 대학교 졸업하고, 뒤늦게 정신과병원에 가서 ADHD 진단을 받은 나의 인생은 어떤 손해를 봤을까?

 

- 첫번째는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한 것이다. 학력에 대한 미련이 아직까지도 남는다.

예전 포스팅에도 썼지만, 외가 쪽은 친척 중에 서울대, 고려대 출신 및 고시패스한 나의 형제도 있듯이 공부머리가 제법 괜찮은 편이다. 하긴 ADHD 환자인 내가 인서울 대학교에 간 것도 공부머리가 없었으면 꿈에도 못꿨을 것이다.

 

-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내가 만약 늦어도, 재수학원 다닐 때라도 정신과병원에 빨리 가서 ADHD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면, 최소 인서울 중상위권? 중경외시, 서성한급 대학교에는 갔을 것 같다. 출신 학력은 죽을때까지 따라간다고 믿는 편이기에 학력에 대한 미련이 쉽게 없어지질 않는다. 실제로 나의 포스팅을 보고 ADHD 약물치료를 시작한 어느 수험생분은 3~5등급에서 1~2등급으로 수능성적이 드라마틱하게 상승했다고 감사댓글을 남겨주신 분도 있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도전해봐" 같은 메세지는 공익광고에서만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30살에 재수해서 명문대가면 뭐해? 의대가는 거 아니면 몰라도? 이미 늦은 것은 늦은거야. 돌이킬 수 없어.

 

- 두번째 손해는 경찰이 된 것이다. 경찰을 간절히 원하는 수험생인 분들에게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원래 경찰이 꿈인 삶과는 너무 삶의 궤적이 달랐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 내가 경찰이 됐다고 말하면 다들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 바실아 너가 경찰이 됐다고? 나는 너가 무슨 은행이나 증권사 갈 줄 알았지.. 진짜 안어울린다 ㅋㅋㅋㅋㅋ" 다들 이런 반응이다.

 

- 그래. 솔직히 말할게. 대학교 졸업 후에 취업 안되니, 공무원이 떠올랐고 제일 빨리 합격이 가능한 시험이 뭘까 고민을 했고, 그게 나한테는 경찰이었어. 그래서 경찰이 됐어.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은혁" 이도현 배우

 

- 넷플릭스 스위트홈의 이도현 배우가 연기한 '은혁' 캐릭터가 그나마 나의 성격과 가장 흡사하다.(외모X)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꽤나 냉소적이지만, 종종 따뜻한 감정도 있는 그런 성향이다. 이런 캐릭터를 가진 내가 경찰이 직업이 된 것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꽤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다. 

 

- 현실적인 얘기도 해볼게. 솔직히 나는 고시패스한 형제가 부러워. 소개팅도 엄청 잘 들어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연애할 수 있는 그런 아우라가 뿜겨. 돈도 잘버니 대출도 잘 나오고, 벌써 차도 샀어.

근데 나는? 9급 말단 공무원아니야? 아직도 기억나. 2019년 5월에 내가 순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수험서를 잔뜩 사고 독서실 책상에 올려놓은 날. 그날 하염없이 경찰수험서만 계속 쳐다봤어. 어쩌다 내가 경찰 준비를 하게 됐을까? 진짜 이거 꿈아닐까? 내인생 어쩌다가..?

 

- 나는 경찰 준비하면서 회의감 느낀 이유가 뭐냐면, 학창시절 건들건들하고 왜소한 애들 괴롭히는 애들 있잖아? 그런애들 상당수가 나중에 경찰 준비하더라고. 그래서 경찰이란 직업에 색안경을 가진 것 같아. 저런 건들건들한 사람이 후배면 상관없겠지만 선배로 만나게 되면 고생 좀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  그런데 웬걸..? 그게 현실이 돼...

 

 

 

 

D.P [황장수]

 

 

- 대박인 거 알려줄까? 그간 내가 블로그 포스팅을 자주 못쓰고 소홀히 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경찰이란 직업에 대해서 회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 이유이기도 해.

 

- 정신적으로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왜냐고? 회사생활 유명한 명언 알지?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그래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 D.P 드라마에서 황장수 병장 알지? 그런 캐릭터야.

가끔 손찌검도 해. 말이 돼? 요즘 세상에 직장에서 손찌검을 한다는게? 기분 나쁘면 "씨발" , "개새끼야" 등 거친 욕설도 서슴지 않아. 주변에 물어보니까 "신입 킬러"라고 불리우는 이런 캐릭터가 종종 있다고 하더라고. 신입은 어리숙하고 일처리가 미흡한게 당연하잖아? 그거를 빌미로 갈구는 거야. 신입은 뭣도 모르고 그냥 당하는거지, 개길 생각도 못하지. 완전 쌩신입이니까. 내가 보기엔 그냥 화풀이 하는 거 같아. 

 

- 참 웃기지 않아?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회사에서 손찌검을 하고 쌍욕을 해. 게다가 경찰이잖아? 물론 이처럼 인간성 덜된 사람 거의 없긴 해.  0.1% 도 안될 걸?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봤으니까. 그런데 하필 재수 없이 내가 그 확률에 걸린거지.

 

-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공감이 되더라. "자살할 용기로 살지 왜 죽어 본인만 손해야"라고 훈수두는 게 정말 의미 없다고 느꼈어. 제 3자가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하면 정말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나야 뭐 그정도까지는 아니였어. 그냥 "많이 힘들다" 정도?

 

- 그래도 다행인게, 조만간 인사발령이 나서 나는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길 것 같아. 다른 근무지가서 좋은 동료들 만나서 일하고 싶어. 이보다 나쁠 순 없지. 더 좋은 동료가 있을 거라 믿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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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대학교에 가지 못한 미련과 경찰이란 직업에 대한 자조섞인 이야기는 모두 하나로 귀결돼.

 

바로 내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가서 ADHD 치료를 빨리 시작 했으면 이런 경험들은 없었을 거란 말이지.

 

명문대 출신에 그럴듯한 전문직으로 일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쩌겠어. 내가 ADHD라는 사실을 20대 후반이 돼서야 알았으니까.

 

앞으로 잘 살아봐야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후회하지말고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