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일기 27] 개인주의 순경은 회식을 혐오해요.
나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이다.
혼자 있을때 비로소 에너지 충전이되고 왁자지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기가 빨린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도 단체로 보는것보다는 단둘이서 보는 것을 선호한다.
패거리 문화를 싫어하며 혼자 있을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편이다.
어느정도 개인주의 성향이냐면 혼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에슐리 같은 뷔페에서 자연스럽게 식사가 가능하다.
내가 배고프면 그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뿐이지
뷔페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이 크게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적당히 염세적이고 꽤나 냉소적이다.
선거시즌, 토론에서 여야막론 정치인들이 앵무새처럼 말하는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라는 문구 자체를 굉장히 싫어한다.
최근 여의도 모 정당 당사앞에서 시위가 있어 경비근무를 섰는데 억울함을 호소하며 울부짖는 시위자들을 거들떠도 안보고 별 대꾸도 하지 않고 양반들이 천민 보듯이 거의 무시하며 당사 앞을 지나가는 유명 정치인들을 보며 내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성악설을 믿으며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일수록 정의롭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 편이다.
마치 돈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제일 사기꾼일 가능성이 큰 것처럼 말이다.
가족끼리여도 수틀리면 의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가족인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친한 친구사이에도 선이 있다고 믿으며 무리한 부탁을 하면서
"우리 우정이 이것밖에 안돼? 이것도 못해줘?" 라고 말하는 친구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손절하며 조심스럽게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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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항상 괴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문유석] 작가님의 책을 읽고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문유석 전 판사님은 23년간 판사로 재직하시다가 은퇴 후,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일반적인 루트가 아닌 <미스 함무라비>, <악마판사> 드라마의 극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책도 내는 작가로 활동하시는데 특히 <개인주의자 선언> 책을 읽고 소름돋았다.
솔직담백한 문체도 문체이지만 무엇보다 문유석 작가님의 성향 자체가 나랑 너무 흡사해서 소름끼쳤다.
'내가 괴짜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같은 사람이 또 있긴 있구나' 라고 느꼈다.
그래서 최근에 문유석 작가님의 책들을 더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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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혐오
혼자서 자유롭게 있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은 불편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바로 회식이다.
부서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부서는 상사가 회식 날짜를 잡고 통보한다.
불참 하기 힘든 늬앙스다.
물론 정 회식에 참석하기 싫으면 가족행사를 핑계대면서 어쩔 수없이 빠져야 된다고 하면 된다.
하지만 가족까지 팔아가며 불참하고 싶지는 않고 그냥 억지로 참여한다.
집단주의 정서가 심한 한국에서 게다가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더 짙은 남초직장의 끝에 있는 경찰이라는 회사에서 나같은 성향의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의 성향을 그대로 회사에서 드러내면 그야말로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마녀사냥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면을 쓴다. 그것도 아주 두꺼운 가면 말이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다.
마치 회식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처럼 군말 없이 회식에 참여하고
인품적으로 젠틀하지도, 업무적으로 프로페셔널 하지도 않은,
내가 그닥 존경하지 않는 상사에게 '다나까'를 써가며 별 관심없는 얘기를 잘 경청하며 듣는다.
상사 테이블 위에 휴지 한겹을, 그 위에는 수저를 가지런하게 놓고 물도 정성스럽게 따르며 예법(?)도 잘 준수한다.
"나는 산채비빔밥 말고 죽은비빔밥 먹을게" 라는 상사의 어처구니없는 농담에 깔깔대며 삐에로처럼 웃는다.
회식을 혐오하지만 누구보다 잘 참여하고, 누구보다 즐거운 척 한다.
사실 회식 때만큼은 내가 화류계 종사자랑 전혀 다를바가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
사회 생활이 다 이런건가?
다들 참고 사는건데, 나만 유독 이상한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