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일기 31]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는건가요?(Feat.누칼협?)
한달에 한 번 정도, 강한 마법의 날이 찾아온다.
이번달의 마법의 날은 오늘이었다.
내가 말하는 마법의 날이란
당신이 생각하는 그 마법은 아니고 경찰이 된 것을 후회하면서 진로를 가볍게 선택한 과거의 나를 자책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날이다.
어둠의 흑마법인지, 빛의 백마법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아무것도 하기 싫고 침대에서 가만히 공무원 의원면직 영상이나 만약에 사회로 나가게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이것저것 유튜브로 하루종일 보는 편이다.
이 행동들이 불평만 많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알을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건설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만... 지금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내가 불평만 많은 사람인지,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인지는....
본 포스팅을 읽는 경시생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다만 나의 일기이고 나의 솔직한 감정 그대로 적을 뿐이니, 경시생분들은 적당히 걸러서 듣기를 바란다.
즐겁게 일하는 동료들도 제법 있으니 말이다.
그저 나에게는 너무나 맞지 않아 후회를 할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저 개인적인 일기로 봐주길 바란다.
물론 햇수로 2년차 신입순경으로 생활하면서 지역경찰이라 불리우는 지구대/파출소 및 기동대밖에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일수도 있다.
무슨 말이냐면...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지구대/파출소 및 기동대는 조직 내부에서도 은연 중 무시하는 풍조가 있다.
참고로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닌 실제로 경찰승진 과목 중 실무종합이라는 교과서에 '경찰문화' 파트에 기술된 내용이다.
최전선인 거친 현장에서 일하다보니 3D 부서라는 이미지도 있고 머리를 안쓰고 몸을 주로 쓴다는 이미지때문에 머리를 쓰는 경찰서 수사부서에서 그들만의 엘리트의식으로 은근히 하대하기도 한다. 실제로 예전에는 지구대에서 현행범체포서 및 범죄발생보고서 등 서류를 경찰서 수사부서로 전달하러 가면 형사들이 서류를 던지면서 왜 이렇게 보고서를 썼냐며 구박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대놓고는 이렇게 못하지만...
또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성격이 괴팍하거나 또라이(?)로 소문나면 세평(세간의 평)이 매우 안좋다.
경찰서에서 보직공모를 할때 중요시 하는게 세평이기에 세평이 안좋으면 그 직원은 경찰서에 들어가기 힘들다.
그렇게 폭탄직원은 결국 지역경찰 및 기동대를 떠돌게 되는것이다.
경찰서에 들어간 동기들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지구대보다는 경찰서 사람들이 젠틀한 편이고 또라이가 적다는 말을 하곤 한다.
뭐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역경찰과 기동대 특성이 다소 마초적이고 거친 대표적인 부서인데 나는 딱 이 두개만 경험하다보니 만약 나에게 맞는 부서에서 일했다면 회사생활에 회의감은커녕 일 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근무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동대 의무복무 2년에 묶여있어서 당장은 2024년 2월까지 기동대에서 근무해야 하며 기동대는 나에게는 정말 괴롭다.
오직 지금의 감정에 대해서만 말해보자면 경찰이 된 것을 꽤나 후회한다.
긴 고민끝에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했다면 나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다만
그때당시의 나는 깊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후회가 되나보다.
무언가 크게 도전해보지도 않고 바로 9급 공무원으로 도망친 셈이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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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동기들을 돌이켜보면 나랑 친했던 동기들은 대부분 샌님성향의 다소 학구적인 친구들이었다.
인서울 중위~중하?급 정도의 대학교이다보니 대부분 공부머리가 제법 있는 친구들이었고 대부분 대기업을 위주로 취업준비를 했고 그 중 조금 더 학구적인 친구들은 고시 준비를 여럿 했다.
나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준비를 잠깐 하다가 몇번 떨어지니 막연한 취업준비에 두려움을 느끼고 고시준비는 뭔가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무서움에 바로 별 큰 고민없이 순경으로 도망쳤다.
그나마 순경을 택한 합리적 이유라면 ADHD와 잘 어울리는 성향의 직업이라는 것?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면서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선을 지향하는 직업이라는 것?...
그렇게 일반적인 취준을 바로 포기하고 순경으로 잽싸게 도망간 덕분에 고시준비나 취준 오래한 친구들보다는 비교적 일찍 취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친했던 동기들은 결국 굴지의 유명한 은행, 증권사, 보험회사 모두 취업을 잘했다.
고시준비하는 친구들도 대부분 합격했다.
최근들어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솔직히 부럽다.
나도 끈기있게 무언가 도전했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도전에 겁을 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내 인생 이렇게 흘러가는거 맞나? 나 지금 뭐하는거지? 지금 이거 맞아?'
더 무서운건 이런 푸념섞인 생각만 하다가 5년 .. 10년.. 20년... 정년때까지 근무할까봐 무섭다.
도대체 나는 무얼 해야할까?
정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