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일기 42] 말의 무게, 그리고 존중에 대하여
2021년 초,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첫 실습지로 XX 파출소에 발령받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파출소장은 60대 초반의 순경 출신으로, 정년을 몇 년 앞둔 분이셨다.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진짜 베테랑’이었다.
물론 모든 분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 정도 연차가 되면 파출소장이라도 파출소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곤 한다.
유령처럼 출근하고, 유령처럼 퇴근하는 ‘말년 병장’의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보면 그런 분이 최고의 관서장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마주한 그 파출소장님은, 전혀 달랐다.
갓 들어온 실습 순경인 나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쓰셨다.
고개를 45도씩이나 숙이며 “어이구 안녕하세요, 바실씨”라고 반갑게 인사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약 4개월의 실습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야” 혹은 “바실아” 같은 말을 쓰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바실씨”라고 불러주시며,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주셨다.
그 파출소장님의 인격적인 훌륭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반면, 나보다 고작 한 계급 위 선배였던 어떤 경장은 완전히 달랐다.
D.P. 드라마 속 황장수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야 이 개새끼야”, “씨발 뭐하냐?” 등의 막말은 물론, 손찌검까지 하던 사람이었다. (과장 아님)
나중에 들어보니, 경찰서 내에서도 이미 ‘또라이’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그 경험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보다 어린 직원이라도, 무조건 존칭을 쓰자.
누구에게든 인격적으로 대하자.
절대 후배 직원들에게 함부로 하지 말자고.
경찰 조직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반장님"이나 "부장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학교에서 교사들끼리 “쌤”이라고 부르듯, 일종의 직장 내 호칭 문화다.
하지만 지구대나 기동대 같은 현장 중심 부서에서는 형·동생 문화가 뿌리 깊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문화가 불편하다.
물론, 영어 닉네임을 쓰는 스타트업처럼 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반장님” 같은 사무적인 호칭이 제일 좋다.
그게 서로 간에 선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 4년 넘게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일선 부서에서 형·동생 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의 힘을 믿는 나로서는 이 문화가 시작되면 결국 ‘선’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도.
상대가 ‘형’일 경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훈계하려는 태도,
사적인 영역까지 간섭하려는 말투가 불쾌하게 다가온다.
물론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이없게도 그런 사람 중 일부는 조직 내에서 징계를 받을 정도로 문제가 있던 이들도 있었다.
‘동생’일 경우에도 문제가 생긴다.
나는 후배나 동생 직원들에게 꽤 잘해주는 편인데, 그걸 만만하게 보고 선을 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절대 먼저 말을 놓지 않으며, 최대한 "반장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존칭은 단순한 언어 습관이 아니다.
그 안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선이 담겨 있다.
나는 오늘도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그 존중의 태도를 지켜가려 한다.
어쩌면 이건 내가 경찰 조직 안에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