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약물치료 후기 31(눈물젖은 책)
2019년 1월, ADHD 판정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2~3주 정도의 복용량 조절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쳐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약을 먹고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했다.
의사선생님에게 ADHD가 확실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내 몸으로 직접 느껴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의자에 앉아, 펜을 잡고 책을 봤다.
그리고..
공부가 너무 잘됐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공부가 잘됐다.
27년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주의산만함이 없어지고
책과 내가 하나가 되는 그야말로 물아일체의 경지였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중력도 느껴지지 않는 우주처럼
그 어떤 외부환경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부하는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ADHD가 없는 사람들은 이 느낌이 일상이라는 거지?'
라고 어린 마음에 그들을 질투하는 마음도 잠깐 생겼다.
한 10분정도 공부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40분이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ADHD가 정말 맞았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몸 속 깊은 곳에서 울분이 터져 나왔다.
내가 느낀 울분의 응어리는 묘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노력은 천재를 이길 수 있다는 노력만능론자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다는 자기계발서의 저자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라던 고2 때 담임선생님?
의지만으로 안될 것이 없다던 부모님?
꼭 공부안하는 애들이 제일 찡찡댄다는 인강 강사들?
엄연히, 그들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ADHD를 가지고 있었고, 그 사실을 모르니 그 대가는 내가 오롯이 치룬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울분을 토해낼 대상이 없었다.
울분은 억울함으로 변했다. 그리고 독서실 책상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 날은, 거의 1시간동안 울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독서실을 나와서,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했다.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됐을까?..'
내가 ADHD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