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의 인생 일기

[경찰일기 23] 역시, 일보다는 사람이지! 본문

바실의 도전기/경찰 일기 (2019.05 ~ ?)

[경찰일기 23] 역시, 일보다는 사람이지!

Nomadic-Basil 2022. 3. 20. 04:19

"야이.. 개새끼야"

 

 

중앙경찰학교에서 4개월동안 교육을 받고 지구대/파출소에서 약 10개월 정도 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지/파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가끔 지구대/파출소 시절이 떠오르고는 한다.

 

이 짧은 10개월은 "일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 라는 인생의 진리를 절실히 깨달은 시간이었달까?

 

 

무슨 말이냐면, 예전에 언급했지만 내가 근무했었던 지구대/파출소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최악이었다.

 

정말이지... 그 10개월의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스스로 대견(?)할 정도로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었다.

 

 

 

 

 

디테일하게 지구대/파출소 썰을 풀자면

 

메인빌런으로는 넷플릭스 D.P 드라마의 황장수 병장이 생각날 정도로

 

쌍팔년도 군대식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이해하기 쉽게 그냥 [황장수]라 칭하겠다.

 

 

황장수가 나에게 했던 짓을 열거 해보자면,

 

 

 

- 실습한 지  한달도 안됐을 때, 그러니까 진짜 생초짜 시절에 많이 어리숙하고 미숙할 때 자잘한 실수를 핑계삼아 욕을 하고 손찌검을 했었다. 백번 양보해서 만약 업무적으로 나태한 태도를 보이거나 중대한 실수를 했고 화에 못이겨 손찌검을 했다면 그나마 이해라고 하겠다만 그런 중대한 실수도 아니였다. A를 가져오라 했는데 A'를 가져다주는 느낌의 정말 별거 아닌 실수였다. 자잘한 실수에 황장수는 나에게 "야이 개새끼야, 정신안차려?" 라고 하면서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지딴에는 신입 군기잡는다고 저랬겠지 싶다.

 

 

 

-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황장수는 나에게 권총을 겨누고 격발까지 했다. 뉴스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예전에 어느 경찰관이 총으로 장난치는 과정에서 의경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오버랩된 나는 소스라치며 놀라게 됐는데 황장수는 그런 나를 보고 키득대며 웃는다. 그리고 넌지시 말한다. "야, 쫄았냐? 총알 없는거 확인했지 새꺄"

 

- 자주가는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황장수는 내게 말한다.

 

"야, 아주머니한테 식사 맛있게 잘먹었다고 재롱 좀 떨어봐" 

 

"선배님 그건 좀.."

 

황장수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야, 해보라니까?"

 

선 넘은 장난에 화가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나는

 

"선배님 하기가 좀 그러네요.. 식사 다했으니 저 먼저 들어갈게요" 라고 말한 뒤,

 

식당 자리를 뜨려고 하자 나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면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데려간다.

 

그리고 황장수는 계속 나의 목덜미를 잡은 채 정색하며 말한다. 

"야 새꺄, 아주머니한테 재롱 좀 떨라니까?, 빨리 해보라고"

 

목덜미를 잡히며 질질 끌려갈 때, 그나마 남아있던 나의 자존감의 마지막 한톨마저 뭉개진 느낌이었다.

 

 

 

 

뭐라도 해야지..

 

 

 

잃을게 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했던가?

 

그렇게 극심한 모욕감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변했다.

 

그때 속이 갑자기 부글부글 끓더니 '씨발! 이 개새끼 진짜 죽여버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권총으로 확 쏴버릴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이성을 잃어버릴 뻔 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화가 난 경험은 처음이었다. 평소 이성적이고 웬만해서는 화가 잘 나지 않는 나의 성격에 저런 생각까지 할 정도면 진짜.. 바닥까지 간 경우가 아니였을까 싶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나는 표정이 굳어졌고 말없이 잠시 그의 눈을 응시했다. 분위기는 잠시 냉랭해졌고

 

눈치빠른 식당아주머니는 "아이고, 경찰아저씨들 한테 내가 뭔 재롱을 받어? 나는 이렇게 식당 자주 와주고 고마워서 내가 오히려 재롱을 펴야하는거 아니야? 됐고, 아저씨들 얼른 들어가봐!" 라고 말하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식당에 방문하자

식당아주머니 왈 " 순경아저씨, 그때 그 양반 왜 그랬대? 나도 깜짝 놀랐네.. 순경 아저씨 이상한 선배때문에 힘들겠어.. 괜찮어?"

 

 

- 본인은 장난으로 생각하겠지만 별 이유없이 주먹으로 툭툭 치는 것

 

- 카드를 주며 슈퍼 가서 뭐 좀 사오라고 심부름 시키는 것

 

- "씨발, 개새끼"처럼 보통사람이라면 정말 화날 때 말고는 쓰지 않을 법한 온갖 쌍욕을 나에게 스스럼없이 욕을 쏘아 대는 것

 

- "넌 씨발 경찰 어떻게 됐냐? 너같이 어리버리한 새끼는 처음봤다. 옛날이었으면 너같은 새끼는 가둬놓고 존나게 팼는데" 이처럼 모욕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에게는 일상이었다.

 

- 항상 무슨 말만 하면 나에게 주먹을 치켜들고 때릴 듯이 모션을 취하는 것

 

- 예전부터 연가 일정 올려놨는데 갑자기 며칠전 자기가 그날 연가 써야한다며 연가빼라고 압박하는 것 

 

- 아직도 기억난다. 어김없이 그 날도 황장수가 나에게 욕을 해대면서 갈궜는데 그때 주변 소리가 갑자기 안들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귀에서 삐---- 하는 이명소리가 크게 들렸다. 흔히 전쟁영화에서 수류탄이 터지면 잠시 주변 소리가 멈추면서 삐- 소리가 나는 장면과 거의 흡사했다. 그 기이한 이명소리의 경험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명이 들릴 수도 있다고 카더라...  그때는 정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나보다.

 

 

모든 일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기에.. 대충 이런 느낌이다.

 

이런 또라이 선배도 문제지만,

 

내가 가장 실망했던 것은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알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묵인했던 다른 선배들의 모습이었다.

 

황장수보다 계급도 짬도 높아서 한 두마디만 내 편에서 얘기해줬어도 큰 도움이 됐을텐데..

 

'그 누구도 내편은 없구나' 라며 큰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정말 다행히도 인사발령 시즌에 새로운 분이 오셨는데, 그 분은 나에게 D.P 드라마의 한호열(구교환 배우)같은 존재였다. 20년 넘게 경찰생활을 하신, 짬이 있는 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청소와 같은 잡일도 솔선수범하여 열심히 하시고 후배에게 잡일을 절대 시키지 않으셨다.

 

무엇보다 황장수의 몰상식한 행동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시고 내편에서 목소리를 내주셨다.

그 이후로 황장수는 나에게 부조리한 행동을 어느정도 자제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내가 업무적으로 실수할 때 화 한번도 안내고 자상하게 알려주셨다.

"바실아! 음.. 잘 하긴 했는데,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 오케이?"

 

그리고 일을 매끄럽게 잘 처리하면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시곤 했다. 그것도 꽤나 과할정도로.

"그래! 바실아! 내가 진짜 농담이 아니라, 지금껏 실습생 수십명은 봐왔는데 바실이처럼 스마트하고 성실하고 예의바른 실습생 못봤어. 바실이는 나중에 어디서든 선배들에게 이쁨 받을거야! 엥? 웃어? 농담아니야 진짜야! 허허, 담배나 피러 가자고!"

 

이런 극명히 다른 선배와 일을 하면서 느꼈다.

 

단순 분실물 신고, 주정차 관련 시비 등 난이도가 낮고 금방 끝나는 간단한 신고일지라도 황장수랑 같은 조로 근무하게 되면 정말이지.. 너무 싫었다. 순찰차에서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그 자체도 싫었고 그 1초, 1분 시간이 너무나 싫었다.

 

반면에

 

변사 사건, 가정폭력, 특수폭행 등 비교적 난이도가 높고 시간이 오래걸리는 신고일지라도 한호열 선배랑 같이 근무조가 되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다. 부패가 진행된 변사체를 보거나 누군가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신고를 처리할지라도 한호열 선배랑 같은 조로 근무하게 되면 으쌰으쌰 하면서 즐겁게 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한호열 선배와 시간이 오래걸리고 빡센 사건을 처리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지구대/파출소로 복귀하던 중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좋으면 상관없어. 역시, 일보다는 사람이지!'

 

 

------------------------

 

[경찰일기 23] 끝.

 

안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