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의 인생 일기

성인 ADHD 약물치료 후기 12 (내가 정신과 병원에 가기까지..) 본문

ADHD 치료후기(바실)

성인 ADHD 약물치료 후기 12 (내가 정신과 병원에 가기까지..)

Nomadic-Basil 2019. 6. 10. 22:30

 

한달만에 글을 올려봅니다!

 

지난 달에, 사실 1일 1포스팅을 결심하고 나름 열심히 써보려고 했는데.. 1일 1포스팅이 쉽지 않더라구요..ㅠ

 

5월 중순에는 예비군훈련을 4일동안 갔다오기도 했고(집에 오자마자 뻗어버림..)

 

최근에 수영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수영을 하고 나면.. 상쾌함은 최고지만.. 몸이 피곤하더라구요 ㅠ

 

물론! 핑계겠죠?ㅎㅎ 이런저런 이유로 포스팅을 안하고 미루다보니.. 벌써 한달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ㅠㅠ

 

 

또! 하나 핑계를 대자면, 제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글로 정제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무슨 학술적인 것을 적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제가 ADHD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ADHD 약물치료를 하면서 느낀 점을 일기처럼 쓰면 되기에.. 큰 부담은 없지만..

 

ADHD 환자 특성상,

 

제 머릿속에 아주 여러가지 생각이 있는데.. (하루에 글 소재가 5개씩 생각나고 그래요 ㅎㅎ)

 

다만, 이것을 정리해서, 주제에 맞게 글을 정제하는 과정이 꽤나 힘들었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습니다.

 

글쓰는 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맞춤법도 신경쓰이고 이것저것 퇴고를 거듭하다보니, 별거 아닌 글에도 1시간씩 걸리더라구요 ㅠㅠ 그래서 ..솔직히.. 귀찮기도 했습니다..ㅎㅎ

 

하지만 이제는 글을 과하게 정제하는 것보다는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글이 다소 난잡해도, 맞춤법이 틀려도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께 양해 구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2019년 1월, ADHD를 확진받고 시작한 블로그에 드디어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도 댓글을 안달아주셔서 그저, 혼자 심심하게 글을 써내려갔지만! 몇몇분이 댓글을 남겨주셔서!

더욱 블로그 포스팅에 신경쓰려고 합니다!

 

제 블로그에 찾아와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부모님의 과잉보호는 나에게 큰 독이었다.

 

2019년 1월에, 스스로 내 발로 정신과병원을 방문하여, ADHD 확진을 받았다.

 

약물치료(콘서타27mg~54mg)를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집중력 문제는 거의 완벽히 해결됐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계획에 따라 행동하며, 하루에 3~4시간씩 했던 게임도, 

 

무의미하게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하는 습관도 단번에 고쳐졌다. 지저분했던 방도 깔끔히 정리할 수 있게 됐다.

 

ADHD 약물치료를 하면서 내 삶은 180도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현재 만족 중이다.

 

아마 몇년 더 빨리, 내가 ADHD임을 알았다면 고시공부에도 도전해봤을 것 같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약물치료를 하면서 몇가지 부작용이 있지만, 부작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쓰려고 한다.

 

 

 

이번 포스팅에 내가 쓰려고 하는 주제는 <정신과 병원에 가기까지> 내가 겪었던 스토리이다.

 

 

흔히, 메스컴에서 보여지는 ADHD의 이미지는 과하게 행동하고, 말이 많고, 산만한, 약간 탱탱볼 같은 이미지다.

 

이러한 이미지덕분에 내가 ADHD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학창시절, 내향적이었고, 부모님 말씀 잘듣고, 공부도 반에서 5등정도하는 모범생에 가까운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 나이 20살 이후부터, '내가 혹시 ADHD는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ADHD로 의심되는 증상들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1. 한 번에 앉아서 20분이상 집중을 못함

 

이전 포스팅에도 자세히 썼지만.. 나는 집중을 잘 못했다.

공부하려는 의지가 매우 충만한 상태이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이기에,

'오늘은 반드시! 열공하고 말테야!'라는 굳은 다짐과 함께 책을 펴지만.. 나의 집중력은 딱 20분이었다.

 

20분이 지나면, 눈에 글자가 들어오지 않고, 다른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손을 꼼지락 거리기도 하고,

음료수에 있는 영양성분표를 보고.. 네이버 기사를 보고.. 딴 짓을 많이 했다.

 

이런 집중 못하는 산만함때문에, 10시간을 도서관에 앉아 있어도 실제 공부한 시간은 2시간정도 됐다.

 

 

2. 1:1로 이야기하는 도중,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끊음 

 

친구들과 얘기하는 도중 친구의 말을 끊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끊으려고 끊은 것이 아닌데..

상대방과 얘기하다가 내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으로 말이 나왔다.

이러한 버릇때문에 친구들로부터 "XX아! 내 말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봐!"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3. 방 정리 못함

 

이전 포스팅에도 썼기에.. 패스!

 

 

2,3은 그렇다쳐도, 1의 경우에는 학생으로서 매우 직접적으로 불편함이 느껴졌기에,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왜 집중을 하지 못할까? 단순히 의지문제인가? 이러한 고민이 나의 머리를 가득 채웠고..

 

ADHD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아마 4년전?? 아마 2015년즈음 이었을 것이다.

 

 

 

2015년 즈음에 내가 ADHD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정신과병원에 가야한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워서..

 

병원 방문을 미뤘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 정신이 멍해진다느니,

 

정신과기록에 남아,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준다는 허무맹랑한 도시전설(?)때문에 미뤘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부모님의 반대였다.

 

 

2015년부터 넌지시 부모님께 ADHD가 의심되니, 정신과병원에 가볼까? 라고 물어본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부모님께서는 집중력은 너의 의지 문제다 혹은 정신과 기록이 얼마나 사회에서 불리한지 아느냐? 

 

이렇게 강하게 반대하셨다.

 

 

그렇게 병원 방문을 미루다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시하고 내 발로 직접 정신과 병원에 방문했다.

 

결국, 4년 후, 지금! 2019년에 가게 됐다.

 

 

약물치료를 통해 ADHD가 극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완화되면서 내 삶은 행복해짐과 동시에, 부모님이 미워졌다.

 

지금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과잉보호적인 양육방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왜곡된 자식사랑

 

 

부모님을 미워하고 맹목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과거도 지금도, 부모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고, 누구보다 나를 지지해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왜곡된 자식사랑, 과잉보호적인 양육방식은 내가 ADHD를 치료받기까지 큰 독이었고 장애물이었다.

 

 

나의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크게 부족함 없이 지냈던 것 같다.

 

 

물론, IMF시절에는 형편이 어려워져서 임대아파트에서 살기는 했지만, 밥 세끼 다 먹고, 유치원도 잘 다녔다. 

 

IMF 이후에는,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잘 풀려서 30평대 아파트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태권도학원, 피아노학원, 바둑학원 등 초등학교때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원을 여러군데 다녔다.

 

 

초등학교때는 유럽으로 어학연수(사실상 한달짜리 해외여행ㅎㅎ) 을 보내주셨다.

 

아마 그때당시 500만원정도 했으니 지금으로치면 천만원이 훨씬 넘는 금액이었는데..

 

별로 가고싶지 않았던 나를 유럽으로 보냈다.

 

 

학원 뺑뺑이 생활이 조금 힘들어서 투정을 부리면 "다 너가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며 나를 꾸짖었다.

 

맞는말처럼 느껴져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자식사랑은 점차 나를 조여왔다.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주 큰 독감에 걸렸다.

 

하루자면 낫는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밥을 먹으면 토하고, 두꺼운 이불을 꽁꽁 싸매도 추웠고,

 

걷는 것 조차 힘든 심한 독감이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심한 독감에 걸렸으니 부모입장에서는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나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모님은 당연히 "오늘은 학교가지말고 집에서 쉬어"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석하면 중학교 갈때 문제가 된다. 결석말고 1교시만 듣고 조퇴해!"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아동학대(?)가 아닌가 싶지만..

 

그때 당시 나에게는 부모님은 슈퍼맨이었고 부모님의 말씀은 성경이었다. 

 

 

학교 안간다고, 힘들다고! 투정을 부려도 부모님은 완고하셨고.. 두꺼운 옷을 겹쳐입고 부모님 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부모님이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1교시동안 책상에 누워있다가 조퇴하고 집으로 왔다.

 

 

아마 이때부터 부모님의 자식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사랑이 정말로 사랑일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집에서 중학교까지의 거리는 자전거타고 10분 거리였다.

 

자전거 타는게 재밌기도 했고, 등교길에 친구랑 만나면서 같이 자전거타면서 수다떠는게 좋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 짧은 등교길 조차도, 차로 태워다 주셨다.

 

그 이유는 내가 자전거 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당시 부모님의 과잉보호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가 보다'하고 부모님의 차를 타고 등교하게 됐다.

 

 

그렇게 부모님의 차를 타고 등교하던 중, 자전거로 같이 등교했던 친구가 왜 요즘은 자전거 안타냐고 물어봤다.

 

사정을 얘기했고 친구가 당황하면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너 마마보이야?, 니가 자전거타고 싶으면 타는거지!"

 

 

 

 

 

 

 

영화 <매트릭스> "네 삶은 네가 통제하는거니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랐던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레오가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알고보면 환상이었듯이??

 

 

이때부터, 중학교 1학년의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너무 나를 사랑해서 문제야'라고 문제의식이 생긴 것이다.

 

 

그 이후로,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지켜본 결과, 부모님의 과잉보호는 나로하여금 그 무엇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사례로, 중국집 사건이 있다.

 

어느 주말, 점심에 짜장면을 시켜먹기로 했다.

 

매일 그렇듯이, 부모님이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자장면을 시키려 하던 찰나에, 문득 배짱을 부려서 

 

"엄마! 내가 자장면 시켜볼래!" 라고 말하며 전화기로 다가갔다.

 

전화기에 중국집 전화번호를 누르고,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나의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슨 중국집에 전화하는 것으로 긴장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가 내 나이 중학교 1학년 때, 낯선 제 3자에게 처음으로 걸어본 전화였다.

 

식은 땀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자장면을 시켰다. 주소를 말하라고 하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주소도 더듬으면서 말했다.

 

'전화하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구나' 느낀 경험이었다.

 

 

 

 

 

다른 사례로는, 비염사건(?)이 있다.

 

 

나는 어릴때부터 비염이 심했다. 그래서 코로 숨쉬지 못했고, 입으로만 숨을 쉬었다. 입으로만 숨쉬다보니 답답했고,

 

감기가 자주 걸렸다. 거의 감기를 2~3달에 한번씩 걸렸던 것 같다. 코에서는 흰 콧물이 아니라, 노란 콧물이 자주 나왔고

 

감기를 걸린 날이면 갈색에 가까운 누런 콧물이 나왔다.

 

초등학교때부터 줄곧 불편하다보니, 부모님에게 비염 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병원에서는 단순비염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 하셨다. <비중격만곡증>이라고 했다.

 

비중격만곡증은 코 뼈가 한쪽으로 휘어서 한 쪽으로 공기가 통하지 않다보니 염증이 자주 생기고, 계속 놔두다 보면, 만성적으로 코가 막히는 질환이다.

 

그때가 중 2정도 나이였기에, 코뼈를 바로 잡는 수술은 성장이 끝난 뒤 하는게 맞고,

 

대신에, 코 안에 염증으로 부풀어 오른 콧살을 레이저로 지지는 것을 추천하셨다.

 

레이저로 부풀어오른 콧살을 지지기만 해도 숨쉬는데 수월하다고 하셨다.

 

'아 드디어 코로 숨쉴 수 있는 건가?' 내심 기뻐했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어릴 때 마취하면 건강에 안좋다'는 이유였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나의 시점으로 보면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의학에 무지한.. 부모님의 편협된 생각이지만 중 2짜리 애가 뭘 알겠는가? 또 부모님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참고로 나는 코가 막히고 입으로만 숨쉬는 호흡의 불편함이 내가 무언가에 집중을 못하는 산만함의 주된 요인인줄 알았다.

 

내가 집중을 못하는 주된 이유는 ADHD였는데 말이다..ㅎㅎ

 

 

결국, 중3, 고1~3, 4년동안 입으로 숨쉬면서 비염수술 할 날을 기다렸다.

 

결론적으로 비염 수술을 하고 공부에 집중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삶의 질은 나아졌지만..

 

 

사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사례가 있지만... 다 얘기하면 오늘 하루 밤을 새워도 모자를 듯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성인이 된 후, 어느정도 정신이 성숙해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을 때, 부모님의 자식사랑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확실히 깨달았고, 부모님의 과잉보호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기숙사에 들어갔다.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도 안걸리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부모님의 과잉보호는 나를 숨막히게 했기에 빨리 멀어지고 싶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기숙사에 들어간 것을 정말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모든 선택이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졌고,

 

좋은 선택이면 성취감을 느꼈고, 나쁜 선택이면 내 스스로 반성하며 삶의 자양분이 됐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일부러 집에 가지 않았다. 두달에 한번? 세달에 한번정도? 집에 갔다.

 

집에가면 숨막히는 부모님의 간섭이 싫었기 때문이다.

 

 

 

 

 

 

 

영화 <올가미> 자식사랑에도 중용이 필요하다.

 

 

두 세달에 한번씩 집에가면 엄마는 엉엉 울었다. 내가 너무 보고싶었단다..ㅎㅎ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가? 2년간의 기숙사 + 자취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고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다.

 

좋은 점도 많았지만.. 확실히 내가 내린 선택에 간섭이 심했다.

 

2015년즈음, 내가 ADHD라는 의심이 거의 확신으로 느꼈다. 부모님에게 "나 ADHD 인거 같다. 병원 가볼까?"라고

 

넌지시 말했고, 부모님은 반대했다.

 

<약 먹으면 멍청해진다>

 

<너는 ADHD일리 없다(내 아들이 ADHD일리 없어! 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듯 하다)>

 

<정신과 기록은 나중에 취업할 때 불리해진다>

 

 

등등.. 정신과병원은 절대 가면 안된다는 늬앙스로 말하기에..

 

'하긴.. 내가 설마 ADHD 겠어.. 재수해서 나름 이름있는 대학교도 들어갔는데.. ADHD는 원래 공부 못하잖아?'라고 생각하며 병원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어릴때부터 익숙해진 부모님의 과잉보호를 벗어나지 못했던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결국 4년 동안 괴로워하다가, 병원에 방문했고 ADHD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부모님은 틀렸고, 내가 옳았다.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날게요.

 

 

ADHD 확진을 받고, 약물치료를 하면서 집중력, 계획성, 의지력, 노력 등 삶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그리고 변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부모님의 과잉보호는 분명히 틀렸다는 사실이며 앞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보살펴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순수한 사랑은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과분한(?) 사랑이 나를 '나답게' 살지 못하게 했다.

 

20여년 동안 가지고 있던 ADHD를 해결했던 것은 다름아닌, 바로 <나> 였다.

 

ADHD 판정을 받음과 동시에

이제는 엄마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됐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