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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의 도전기/경찰 일기 (2019.05 ~ ?)

[경찰일기 53] 적을 만들지 않는 삶

Nomadic-Basil 2026. 10. 24. 14:49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

 
 

내가 일하는 근무지에는 다양한 직군들이 섞여 일한다
 
민감한 업무를 두고 은근히 서로 견제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끼리도 서로 싫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현대 정치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 내 인생철학 중 하나는 "아무리 싫어도 절대 적을 만들지 않는다" 이다.
 
우호적이진 못해도, 적대하진 않는다
 
물론 모두가 싫어하는 빌런 같은 사람이라면 우호적으로 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소한의 친절함은 지키려 한다.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감정적으로 받아치지 않고,
 
사무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응한다.
 
물론 인격적인 모독이나 원색적인 비난까지 참을 생각은 없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맞서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적당히 예의 없고 기분 나쁜 말이라면 감정을 싣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직장에서 적이 생기면 그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그 스트레스가 싫다.
 
둘째, 이쪽이 더 중요한데, 내가 적대한 사람이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가늠할 수 없다.
 
금융시장에 빗대면 블랙스완을 피하는 것이다. 풋옵션 매도처럼 높은 확률로 꾸준히 작은 수익을 벌다가,
 
극단의 테일리스크가 한 번 터지면 모든 걸 잃는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그 블랙스완을 피하고 싶다.
 
 
 

10명 중 8~9명이 싫어하던 사람

 
최근 근무지에 10명 중 8~9명이 싫어하는 중년의 민간인 한 분이 있었다.
 
다혈질에 성격이 고약했고, 자기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들에게 직위 상관없이 당연하게 반말을 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 사람이 나를 처음보자마자 한 얘기는
 
"경찰 아저씨, 몇 살이예요? 아 내 아들보다 어리네" 였다. 뭔가 쎄했다.
 
나의 경험칙상 첫만남부터 자신의 나이를 강조하는 사람치고 좋은 기억이 없다.
 
시간이 지나자 그 사람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업무가 아닌 일에도 일일이 참견하며 명령하듯 말했다.

 

그렇다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보조 업무를 하는 임시직, 공공일자리 개념으로 근무하는 분이었다.
 
업무의 주된 책임을 지지 않는 자리였다.
 
다만 그 공간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은 나름대로 연륜을 존중해 주었다.
 
문제는 그 배려가 때로는 자신의 권한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했다는 점이다.
 
그분은 자신의 나이를 무기로 착각하는 듯했다.
 
반말은 기본이었다.
 
내가 아들뻘 젊은 경찰이라는 이유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렇게 하면 어떡하냐 하며 점점 선을 넘었다.
 
나의 직속 팀장님도 하지 않을 잔소리까지 하기 시작했다.
 
비유를 하자면, 코치가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감독에게 명령조, 질책조로 지시하는 느낌이었다.
 
주된 책임은 내가 지는 일인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내 영역을 침범해 오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간섭이 심해 꽤나 갈등이 있었다.
 
 

"아저씨, 그건 월권이니까 참견 그만하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솔직히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을 가라앉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더는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서로 마주칠 때 예의있게 인사는 했다.
 
그의 나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딱 사무적으로만 대했다.
 
적은 만들지 않되 선은 긋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얼마 후, 그분은 또 자기 업무도 아닌 일에 참견하다가 다른 사람과 크게 다퉜다.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입으로 담을 수 없는 험한 욕설을 내뱉으면서 굉장히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다행히 뉴스에 나올 만큼 큰 사건은 아니었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그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했다.
 
그분은 바로 근무지를 떠나게 되었다.
 
지금 내 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건 불편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후련함보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만약 그가 나이를 무기로 선을 넘었을 때,
 
내가 참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맞서 싸웠다면 어땠을까? 그날 그의 폭력성의 끝이 나를 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불의와 무례를 마주한다.
 
그때마다 내 안의 화를 온전히 표출하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길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감정의 조각을 함부로 던져 상대의 폭주를 유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날 나를 지켜낸 것은 나의 뛰어난 제압술도, 강한 공권력도 아니었다.
 
그저 분노의 순간에 한 걸음 물러서서 내 안의 화를 누르고 '중립'을 지켜낸,
 
지독하리만큼 냉정했던 나의 침묵이었다.
 
복잡한 사회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때로는 그 누구의 적도 되지 않는 철저한 중립일지도 모른다.
 
참는다는 건 지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맞서지 않아도 되는 싸움을 가려내는 일이다.
 
세상에는 상식을 벗어나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이겨 봐야 얻는 것은 없고, 질 때 잃는 것만 크다.
 
그래서 나는 무례한 사람에 대해서 사무적으로, 담담하게, 선은 긋되 적은 만들지 않는 쪽을 택하려 한다.
 
작은 불편을 견디는 대가로 큰 위험을 피할 수 있다면, 그건 꽤 남는 장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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