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의 인생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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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의 도전기/경찰 일기 (2019.05 ~ ?)

[경찰일기 16] 살얼음판

Nomadic-Basil 2021. 6. 1. 02:17

 

나의 일상?...ㅎㅎㅎㅎㅎ

 


4교대(정확히는 4팀 2교대)에서 신입경찰 생활 중이다.

즉, 내가 근무하는 지/파에는 4개의 팀이 있다.

내가 근무하는 팀은 A팀인데, 첫 출근 날 뭔가 분위기가 쎄~했다.

젊은 20~30대의 순경, 경장이 거의 없고 주로 40~50대의 경위분들이 대다수라 그런지 과묵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나의 전담사수(?)로 지정된 선배분도 나에게 그닥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긴 얼마나 많은 실습생들을 봐왔을까? 관심을 주는게 오히려 감사할 상황이겠다.

그렇게 약 3주 가량 일을 해본 결과, 약간 과장하자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경찰학교 동기들을 보면 맞사수가 20~30대 젊은 순경,경장,경사 분들이라 이것저것 먼저 일을 알려주고 틀려도

"신입이니까 모르는게 당연하고 틀리는게 당연한거니까 일단 해봐, 모르면 계속 물어봐"

등 신입들을 케어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반해..

나의 경우는

"야! 경찰학교에서 안배웠어?"

"아오! 답답해 야 저리가 비켜!"

"너 왜 이렇게 어리버리하냐? 군대는 다녀왔어?!"

"자꾸 그따위로 할래?"

"이 새끼 이거, 공부만 잘했지 일머리는 ㅈ도 없네"

등등 다소 마초스럽게 멘토링(?)해주신다.

선배분의 원래 대화 스타일이 악의는 없고 다소 마초적인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다.

내가 일머리가 부족해서, 3개를 알려줘야지 1개를 겨우 아는 사람이라면 거칠게 혼나는게 이해라도 되겠으나.. 나는 나름 일머리가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혼나니 좀 억울하고 서럽기도 하다.

애초에 일을 안알려주는데 어쩌란거지?

일을 물어보면 매우 귀찮은 내색을 표하셔서 일 물어보는 것도 눈치보인다.

그저 어깨너머로 배울 뿐이다.

어떤 선배에게 A라는 방식으로 배워서 A대로 처리하면 다른 선배는 왜 A식으로 처리하냐면서 혼내신다.

차마 혼나면서 "다른 선배한테 A대로 배웠는데요"라고 말하는 것은 건방져보일까봐 그저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합니다"만 반복한다.

내가 선배분들에게 밉보였나? 내가 인상이 안좋나? 뭐 실수 한 거 있나? 등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는 했다.

신입이라 혼나면서 일을 배우는게 당연한 것을 알면서도 뭔가 가슴속에 응어리가 생기고,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자주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어제 힐링되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말이냐면, 어제 C팀에서 우리팀으로 잠시 지원근무를 나온 적이 있는데 젊은 20대 선배와 40대후반의 경위님이셨다.

20대 선배가 말하셨다.

"바실님, 거기 A팀 분위기 별로죠? 거기 팀원들끼리 사이 안좋아서 서로 얘기도 잘 안한다고 들었는데.. 맞죠? 아마 일 물어보는 것도 눈치 보일거예요. 저 지원근무 나올 때 다 물어보세요" 라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나 혼자 생각했다. '아.. 내 잘못이 아니구나. 그냥 팀 분위기가 그런거구나'


40대 후반의 경위님도 말씀하셨다.

"바실 순경, 어때 일은 할만해? 아 A팀 이랬지? 거기 분위기 별론데~ 분위기 적응 잘 안되지? 우리팀 들어왔으면 내가 챙겨줬을텐데.. 그래도 나야 뭐 지원근무 자주 하니까 나 있을때 이것저것 물어봐. 신입일 때 많이 물어보고, 실수하고 하는거지. 그러라고 실습기간이 있는거 아니겠어? 바실이 너 담배 핀댔지? 같이 담배나 피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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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훈훈한 얘기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혼나는 것은 순전히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속마음으로는 정말 C팀에 배정받아서 실습 생활을 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에이 썅! 팀분위기가 문제지!! 내 잘못도 아닌데 그냥 얼굴에 철면피깔고 혼나면서 일 배우자> 라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되는 분기점이 됐다.

더불어 멘탈도 더 강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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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일기 끝.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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