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의 인생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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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의 도전기/경찰 일기 (2019.05 ~ ?)

[경찰일기 17] 술이 뭐길래

Nomadic-Basil 2021. 6. 9. 01:53


지구대에서 근무한 지 벌써 한달이나 됐다.

실습생이기에 주도적으로 사건을 처리한다기보다는 그저 선배님들이 어떻게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지 옆에서 보고 배우는 식이다.

실습한지 얼마 안됐을 때, 업무적인 용어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선배님의 지시를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서

<왜 이렇게 말귀를 못알아듣냐?!>

<어리버리 타지마!> 라고 혼나기도 했고

지구대 특성 상 남초사회이고 위계질서가 선명한 마초적인 문화이다보니 막내로서 싹싹하게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갔어야 했는데 나의 성격상 숫기가 없어서 선배분들이 좀 답답하셨나보다.

<바실아 넌 막내다움이 없어! 막내는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가야지! 선배가 너한테 친절히 하나하나 다 알려줄 수는 없는거야>

라고 충고를 듣기도 했다.

그래서 인사할 때 일부러 <안녕하십니까?!!>를 크고 당차게 외치기도 하고 선배분들이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들을 치우는 등 점점 막내답게 변해가고 있다.

나의 성격을 바꿔가는 과정이 꽤나 어색하고 힘들지만 사회생활이 이런거구나 라는 생각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렇게 한달이란 짧은 시간동안 업무적인 용어도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점차 선배분들이 챙겨주신다.

그리고 얼마전에 상장을 받았다.

상장은 나중에 승진시험 때 필요한 점수라던데..

난 애초에 승진욕심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상장을 챙겨주시니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출근 때마다 선배들에게 크고 작은 실수들로 혼나기만 해서 <내가 그렇게 일머리가 없나? 뭐 잘못했나?>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하다가

막상 상장을 챙겨주시니

<이게 남초직장 특유의 츤데레인가?> 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8월 말이 되면 실습생 신분이 끝나고 정말 1인분을 해야하는 경찰관이 돼야 하니 자만하지말고 적극적으로 일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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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치곤 제법 다양한 사건을 접했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많구나>라고 느꼈다.

생각보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강력사건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주취자 관련 사건은 정~~말 많다.

어떤 선배님들은 장난스레
<담배말고 술에다가 엄청 세금을 때려야 돼!! 주취자 이젠 지겹다..!!>라고 말씀하신다.

단순 주취자면 달래면서 집으로 귀가 시키면 되지만 술에 완전히 취해버린 만취자는 정말 답이 없다.

실제로 내 눈 앞에서 어떤 만취자가 주먹을 휘둘러 선배분이 맞아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봤다.

그렇게 공무집행방해로 체포가 됐고 시간이 지나 술이 좀 깬 듯하더니 엄청 울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죄송해요> 등 우리에게 선처를 구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경찰을 주먹으로 때린 것은 변함이 없으니 공무집행방해죄를 범한 범죄자가 된 것이다.

또 어느 만취자는 걸을 수 조차 없을 만큼 잔뜩 술에 취했었고 일으켜 세우려고 뒤에서 잡고 끌어 올리다가 나의 허벅지가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아..! 그렇다. 만취자가 오줌을 싼 것이다
경찰제복이 오줌범벅이 됐다.

경찰제복과 오줌, 참으로 요상한 조합이지만 앞으로는 매우 흔하게 겪을 조합이 아닐까 싶다.

술이 깬 만취자는 나에게 연거푸 미안하다고 말했다.

바지에서 오줌 찌린내가 진동했지만

가슴 속 깊은 짜증은 저 멀리 날라갔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말라> 라는 말이 있듯이

<술을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말자>

참.

술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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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일기 17 끝.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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